은밀하고 위대한 인삼 이야기 – 조선과 일본의 인삼 교역이 꽃피운 진셍로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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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위대한 인삼 이야기 – 조선과 일본의 인삼 교역이 꽃피운 진셍로드

삼토리 2017.07.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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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은 '겐로쿠 문화'라는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은 매장량이 풍부한 일본은 이 시기에 화폐로 은화를 통용했는데요. 당시 조선의 대표 상품이 인삼이었다면 일본은 바로 ‘은(銀)’이었죠. 조선시대에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는 약 250근 정도의 인삼을 예물로 전달했는데, 일본은 그 대가로 은을 보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정련 기술이 발달되면서 일본에서 은 산출량이 급증했던 것이죠.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 

일본 에도막부에서 조선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순도 80%의 은을 특별히 주조하여 

인삼거래에만 사용했던 특수 화폐


일본은 순도 80%에 달하는 '게이초 은(1609~1695년)'이라는 고급 은화를 사용했다고 해요. 그런데 은이 점차 고갈되면서 겐로쿠 시대(1688~1703년) 초기인 1695년 순도 64%로 떨어진 '겐로쿠 은'으로 화폐개혁을 합니다. 



 

조선과의 교역에서 일본의 은 유출은 심각했는데요. 당시 일본은 조선인삼 수입에 상당량의 은화를 지출해야 했어요. 죠쿄(1684~1688년) 연간에는 인삼 수입량이 5천근에 달했고, 막부는 그 비용으로 1만 냥이 넘는 자금을 쓰시마로 보냈다고 하니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조선과 일본의 교역에서 은이 40%정도 차지했죠.



 


조선과 일본은 여러 차례의 교섭 끝에 겐로쿠 은을 인정하고 대신 비단의 가격을 인상키로 합니다. 또 조선인삼 구입에 쓸 '인삼대왕고은'이란 특별 제조한 은화를 통용하기로 했죠. ‘인삼대왕고은’은 일본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조선인삼 무역에만 통용하도록 했죠. 



 


일본은 조선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특별히 은을 주조할 정도로 인삼구입에 목말라 했다고 해요. 또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은화를 대청국의 교역 결재 수단으로 활용해서 조선•중국•일본의 3국 교역이 활발해졌죠. 이를 중국의 실크로드에 견주어 '진셍로드'라고 부릅니다.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인삼과 은의 교역이 활발했던 것은 양국에 두 특산물이 풍부했고 부피가 작아 소량으로도 높은 고부가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상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인삼 생산량 감소로 가격이 상승한 이유로 일본 입장에서 막대한 은의 유출은 막부 재정에 부담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쿄호개혁의 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쿄호개혁은 당시까지의 문치 정치의 중요성을 축소시키고 무단 정치 중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 방식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일본 3대 개혁의 하나인데요. 검소와 검약을 중시하여 막부의 재정을 안정시켰습니다.




활발하던 양국의 인삼과 은 교역은 18세기 중반에 들어 현격히 줄어듭니다. 조선인삼이 희귀해지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일본도 은의 막대한 유출로 재정 압박을 받자 청나라를 통해 값싼 미국 삼을 수입하게 되죠. 또한 이 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생삼을 몰래 들여와 인삼 재배를 시도해 국내 생산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18세기 중엽 이후 은의 유입과 인삼의 유출이 크게 줄어듬에 따라 조•일 무역은 전반적으로 쇠퇴합니다. 조선은 일본의 은이 덜 들어와 대청 무역의 결재 수단이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는 등 진셍로드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죠. 17, 18세기 한•중•일 3국 무역의 번영과 쇠퇴에 인삼 가격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국제화폐로서 인삼의 위상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 포스팅은 도서 '은밀하고 위대한 인삼 이야기(옥순종 저)'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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