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삼 이야기 - 재배의 씨앗, 백성의 눈물 삼폐(蔘弊) 본문

삼스토리 [KGC정관장 스토리]/인삼 스토리

조선시대 인삼 이야기 - 재배의 씨앗, 백성의 눈물 삼폐(蔘弊)

삼토리 2018.01.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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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삼 이야기 - 재배의 씨앗, 백성의 눈물 삼폐(蔘弊)



여러분 요즘은 누구나 쉽게 인삼을 접할 수 있지만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왕실이나 귀족 계급이 아니면

구경 조차 할 수 없었단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고려 말 바둑 실력을 바탕으로 원 황제의 신임을 얻은 

조윤통은 채삼관으로 임명받습니다.

『고려사절요』를 살펴보면 조윤통이 해마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인민을 징발하여 삼을 캤는데,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제때 바치지 못하면 

은이나 비단을 징수하여 사리를 취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몹시 괴로워 하였고 

고려 조정은 중국에 조윤통의 삼폐를 전하며 그의 채삼관 역할을 중지시켰답니다.




 

인류가 처음 접한 삼은 산삼이었습니다.

고대문헌, 삼국, 고려, 조선 시대 기록에 나오는 삼은 모두 산삼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대량으로 거두어들이면서 점차 고갈되었다네요.

삼이 귀해지자 자연의 선물 인삼은 민중들에겐 선물이 아닌 큰 짐이 되었습니다.

많이 생산되는 지방은 많은 대로,

적게 생산되는 지방은 적은 대로 부담을 겪었는데요..

여기저기서 인삼의 폐해가 발생되고,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도망가기에 이르렀죠.


 



조선 영조 때는 

‘삼은 귀하고 채취하지 못해 호당 10냥으로 대체하지만 

지방 산물은 돈이 될 것이 없어 전답과 가산을 팔고 

처자를 노비로 팔아 넘겨야 하니 보따리 싸서 

도망가는 자가 길을 메워 호수는 반감되었다’

라는 장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계로 미루어봐도 

삼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귀물이라 부른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삼 재배가 

시도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홍삼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인삼에

백성들의 뼈아픈 고충이 담겨있었네요.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우리 인삼이죠?

그런 우리 인삼과 함께

더 건강한 겨울나기 하세요!



* 본 포스팅은 도서 '은밀하고 위대한 인삼 이야기(옥순종 저)'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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