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 1 본문

삼스토리 [KGC정관장 스토리]/인삼 스토리

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 1

삼토리 2018.06.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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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建功湯)》- 1



조선의 영조는 무려 52년(1724~1776) 동안 임금의 자리에 있었고, 83세의 장수를 누린 왕입니다. 우리는 영조를 조선의 중흥시대를 열어간 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영조는 ‘누구의 편도 없고 어떤 당파도 없는, 탕탕(蕩蕩) 평평(平平)’을 왕도(王道)로 내세우는 한편 힘없는 양인만 내야 했던 양역의 폐단을 바로잡는 균역법을 시행하여 민생을 펴게 하였습니다. 또한 노비의 신공을 절반으로 감해주는가 하면 서얼을 등용해 사회참여의 불평등을 해소하려 하였고, 각종 서적을 간행하여 문화 중흥의 기반을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영조는 어머니의 미천함에서 오는 심적 갈등과, 이복형인 경종의 독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그리고 심지어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유언비어에 시달려야 했고, 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란도 진압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스승과 같은 군주의 상을 세우기 위해 부지런하고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탕평에 의한 정국 안정을 바탕으로 민생 문제를 해결하여 민심을 추스르면서 각 방면에 부흥기를 마련한 빼어난 영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조의 건강을 지켜주는 약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건공탕(建功湯)입니다. 건공탕은 영조가 직접 붙인 이름인데 평소 가장 많이 복용한 약이었습니다. ‘건공(建功)’ 즉 영조의 건강을 지키는 공신 같은 약이 건공탕이었던 것입니다. 이 건공탕은 인삼, 백출, 말린 생강[乾薑], 감초를 달인 이중탕(理中湯)에다가, 인삼 두 돈쭝에 좁쌀을 더 넣어 마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건공탕의 핵심 재료는 인삼이었던 것입니다.


 



건공탕이란 이름은 영조가 직접 지어 하사했습니다. 1758년(영조34) 영조는 자신의 병에 차도가 있자 “이것은 이중탕의 공이다. 이중탕을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영조의 나이 65세 때였다고 합니다. 영조는 평생을 살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질병을 알아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이나 그로 인한 슬픔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육체적인 건강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조는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다가도 저녁은 꼭 챙겨 먹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규칙성 있는 식생활이 건강 유지의 기본이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여기에 건공탕을 하루 2~3차례 마신 것도 그 비결 중의 하나였습니다.

 




영조는 1762년(영조38) 69세 때부터는 이중건공탕을 하루 두 번에서 세 번으로 늘리고 이름도 그냥 ‘건공탕’이라 불렀습니다. 영조는 허리 또는 아랫배가 아픈 병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이를 다스리기 위해 건공탕을 하루에 네 번 올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칠순에 가까운 영조가 몸이 불편한 중에도,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종일 낮과 밤을 새워도 스스로 피로한 줄 몰랐던 데에는 건공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영조 대왕과 건공탕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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