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建功湯)》- 2 본문

삼스토리 [KGC정관장 스토리]/인삼 스토리

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建功湯)》- 2

삼토리 2018.08.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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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교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 《영조 대왕과 건공탕(建功湯)》- 2



이중탕은 건공탕의 전신입니다. 1758년(영조34) 임금의 환후가 조금 낫자 평소 복용하던 탕 이름 뒤에 건공을 붙여 이중건공탕이라 한 것입니다. 이중탕은 한의학상의 처방으로 위장 기능이 허약하며 혈색이 나쁘고 수족이 차며 종종 구토, 두중(頭重), 위통일 때 쓰입니다. 건공탕은 여기에 인삼과 좁쌀을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영조는 건공탕과 이중탕을 의인화하여 누구의 공이 더 큰가를 겨루게 하는 형식의 글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영조는 눈이 어둡고 어질한 증세가 특히 심할 때에는 육군자탕을 복용하였습니다. 육군자탕은 반하(半夏), 백출, 진피, 백복령, 인삼, 감초, 생강, 대추 등으로 만든 것입니다. 기가 허한 때 쓰는 보약인데 식욕부진, 피로, 손발이 차고 빈혈 증세를 보일 때도 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영조는 육군자탕이란 이름에 걸 맞는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건공탕으로 바꾸어 마시자 자신의 기운이 편안해 졌다고 하였습니다. 건공탕이 영조에게는 더 맞았던 것입니다.


 



영조는 건공탕으로 건강을 되찾고 일상의 활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 가자 건공탕으로도 약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고, 새로운 처방 없이 그저 건공탕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 영조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에 영조는 건공탕을 의인화하여 문답의 형식을 빌린 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건공탕은 애증의 관계에 놓인 연인처럼 혹은 먹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계륵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영조에게 건공탕은 단순한 탕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건공탕은 늙었지만 깨어 있는 정신으로 영조가 일구고자 하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비추어보는 거울이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중흥을 이끈 영조의 곁에는 항상 건공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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